한국 명지병원 가족 여러분께
안녕하세요? 저는 네팔에서 온 번더나 무거라띠입니다. 제가 사는 네팔은 농업국가입니다. 저는 2005년 6월 15일, 네팔 수도인 카트만두에서 매우 먼 돌라카에서 태어났습니다. 저는 불행히도 신의 장난인지 저의 운명인건지 병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저희 가족은 6명이고 부모님께서는 저희를 키우기 위해 일당을 받아 일을 하고 계시며 하루하루 끼니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계십니다. 저희는 농사 지을 땅이 거의 없어서 저희 땅에서 자라는 작물로는 겨우 세 달을 버틸 수 있습니다. 저희 가족이 버는 수입으로 간신히 생계유지를 할 뿐이지 치료를 받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저의 치료를 위해 돈을 모으셨고 저를 네팔의 여러 병원에 데리고 갔습니다. 하지만 모든 의사선생님들은 저의 치료는 불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희 가족이 일당으로 버는 돈으로는 기본적 생계유지도 어려워서 저희 가족들에게 제 치료는 그저 꿈이었습니다. 저는 저의 병을 알게 되고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것까지 알게 된 후 고통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미래의 더 나은 삶에 대한 작은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2015년 4월 25일, 네팔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제 삶은 더 많은 고통과 어려움이 더해졌습니다. 저희는 지진으로 옷, 음식 그리고 집을 잃었습니다. 저는 제 병과 지진으로 인해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저는 2016년 3월에 네팔의 아시안 포럼과 한국의 명지병원이 제가 사는 돌라카에 무료 의료캠프를 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몇 천 명의 사람들이 의료캠프에 긴 줄을 섰고 저도 그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저는 의료캠프에서 진료를 받은 후에 안도했지만 제 병이 치료 될 수 있을지 확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시안 포럼의 Shiddhi Chandra Baral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치료를 위해 한국으로 가게 되어 굉장히 기뻤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는 지금까지 해외에 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두렵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두려움, 흥분 그리고 호기심 같은 여러 감정이 뒤섞인 채로 저희 엄마와 Shiddhi Chandra Baral을 따라 한국으로 갔습니다. 한국의 의학적 치료와 다른 서비스들은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좋았고 매우 친절해서 저는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손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그 후에 저는 전보다 행복해졌고 수술 후 새 삶을 얻었습니다. 이제 저는 후속치료를 위해 두 번째로 한국에 와있습니다. 이번에는 걱정하지 않았고 저의 두 번째 수술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이제 저는 정말 기쁩니다. 하지만 언어의 장벽 때문에 약간 아쉽습니다. 제가 한국어를 말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면 여러분 모두에게 저의 행복을 표현하고 직접 감사하다고 말씀드렸을텐데…. 하지만 저는 그저 얼굴을 보고 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두 차례의 수술로 이제 새 삶을 얻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음 수술에 전과 같은 지원을 해주실 것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또 앞으로 추가적으로 저의 공부에 지원해주시기를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앞으로 최선을 다해 공부할 것을 약속 드리고 장래에 아프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꼭 돕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명지병원 모든 가족들과 저의 건강과 행복한 삶을 빌어주시는 분들께 더 큰 성공과 발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제게 새 삶을 주신 병원의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리고 건강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럼 이만 편지를 마치겠습니다. 2017년 6월 29일 네팔 돌라카의 Bandana Mugrati올림
|